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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진원지

미디어/디지털라이프

by 망명객 2011. 11. 1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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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깬 뒤에도 일어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립니다. 이부자리 속의 따스한 온기도 원인이지만 아이패드도 한 몫 단단히 합니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주요 신문사 기사를 한번 훑어보는 곳도 이부자리 속이죠. 중앙일보 앱이 제공하는 만화(국시의 달인)를 제일 먼저 확인하는 요즘입니다.  

서울시장 선거 뒤 보수 일간지들이 단단히 삐친 모양입니다. '괴담'과의 전쟁이라도 선포한 듯합니다. 사설 동원뿐만 아니라 관련 기사들을 연거푸 쏟아냅니다. 대놓고 치는 조선과 은근히 따라가는 중앙입니다. (동아는 앱을 설치하지 않아, 제 입장에선 '아웃오브안중'입니다.)
 

한 면에 무려 꼭지 4개. 역시 팰 땐 확실히 패야하는 조선!



괴담(怪談)은 괴상한 이야기를 뜻합니다. 요즘 언론이 사용하는 괴담은 '유언비어'의 속성에 더 가깝습니다. 유언비어는 "일종의 보도, 설명, 신념, 의견"으로 비공식적이고 근거가 불확실하며 광범위한 유포에 따라 다수가 수용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구두로 전달'된다는 특징도 갖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가 유통 경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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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를 바라보는 관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병리적 현상으로 파악해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와 "불완전한 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대안으로 파악해 긍정적으로 보는 태도"죠. 전자가 보수진영의 태도이고 후자의 입장은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민중의 언론"이라고 현상을 파악하죠. 이 때문에 "유언비어는 지배세력의 혐오와 탄압의 대상"이 됩니다.

"절박하고 중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대처 노력을 기울"이는 현실적 문제가 유언비어의 중심에 자리합니다.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선 올바른 정보가 필요하겠죠. "보도원으로부터 적절한 정보를 구할 수 없을 때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게 되며, 이런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뉴스를 구할 수 없을 때 뉴스의 형태로 급조되는 것이 유언비어"입니다. 보도 내용이 제 구실을 못하는 상황에서 뉴스에 대한 수요가 기존 채널의 뉴스 공급을 초과할 때 유언비어 발생 가능성이 생긴다는 이야기죠. 

유언비어는 널리 퍼진 소문이란 뜻도 담고 있습니다. 그만큼 해당 사안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회적 위기 상황에 사회적 사건이나 문제를 대상으로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의견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유언비어가 내포하는 "사회성의 강도는 그 사회의 유연성과 관계" 있습니다. 공산주의나 독재국가처럼 언론자유가 없는 경직된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대부분의 유언비어가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 수 또한 많고 또 더 신뢰를 받"습니다.

괴담이나 유언비어는 사회적 통념상 실제로는 전혀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있었던 것처럼 전해지는 내용을 지칭할 때 이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런 발화 내용들은 일정한 조건과 원인 아래에서 발생하므로 전혀 사실무근인 것은 아닙니다. 유언비어의 확산성은 이를 전달하는 사람들을 납득시켰기 때문입니다. 전혀 사실과 상반되는 내용이라면 그만큼 빠르고 널리 퍼질 수는 없습니다.

유언비어 전체가 완전한 사실은 아니더라도 "거기에는 얼마간의 사실이 존재"합니다. 그 이유는 메시지 자체에 합리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유언비어는 집단지성 작품의 원조격이죠. 연구 결과물을 검토한 결과 "유언비어는 전달되어가는 과정에서 점점 더 그럴 듯"하게 진화합니다. "합리적인 상상이 가미됨으로써 사회적 현실의 움직임을 실제 이상으로 날카롭게 보여주는 것"이 유언비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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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글 여기까지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본문 내용은 기존 문헌 내용을 일부 요약한 것일 뿐입니다. 「유언비어와 정치」라는 제목으로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언론정보연구>에 담긴 이효성 교수의 글이죠. 23년 전인 1988년에 발표한 논문을 오늘날에 끄집어 읽어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효성 교수는 유언비어의 단속 방법을 다섯 가지로 정리합니다. 1. 유언비어 내용 부정 - 별 효과 없음, 2. 보도 검열 -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으나 역효과가 큼, 3. 유언비어 날조 유포 금지 법 제정 - 효과 없고 여론 탄압 빌미 작용(긴급조치 9호), 4. 유언비어 대책으로 공식 채널 통해 진상 발표 - 유언비어 발생 이전에 먼저 사용해야 하며 발생 후에는 효과 없음, 5. 역선전 - 효과는 있으나 흑색선전과 결부해 유언비어를 선전에 이용하기에 유언비어 자체를 위험한 선전수단으로 만듬.


페이스북 '조선일보' 검색 결과. 존재감 없음.


저자도 지적하듯 중요한 건 단속이 아니라 공식적 채널을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일입니다. 물론 보수언론이 괴담 운운하는 건 SNS채널 통제와 함께 누리꾼들의 자체 검열 강화가 목적이겠죠. 대다수의 언론사가 SNS쪽에 관심을 갖고 인력과 자원을 투여하는 것과 달리 보수언론은 SNS계에선 존재감이 없습니다. 포털이나 게시판에게는 기사 전재를 불허하거나 실명재 도입 촉구의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만 SNS에선 누리꾼의 입을 원천 봉쇄하는 것 말고는 딱히 답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보수언론사입니다. 

괴담으로 통용되는 유언비어 관련 논문 내용을 요약한 건, 보수언론사가 개탄하는 괴담 유포의 책임이 정권과 함께 보수언론사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신뢰도 면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매체가 괴담 운운하며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태도는 결코 떳떳하지 않습니다. 

인터넷 세상입니다. 저 또한 괴담 내용을 SNS에서 접하긴 했습니다만, 그 내용을 굳이 믿진 않습니다. 정파적으로 갈라선 언론계 못지 않게, 트위터에도 얼굴 가린 채 극단적인 논리만 펴대는 사람들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괴담이 퍼지긴 했습니다만, 제 관찰 결론은 터무니 없는 이야긴 수그러들기 마련이란 겁니다. 

한미FTA를 둘러싼 여러 쟁점들이 찬반 양론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검토해도 될 것을 무리한 일정으로 추진하는 것 자체가 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괴담의 탄생은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결과입니다. 앞서 인용한 논문의 결론에서 저자가 꺼낸 이야기는 20년을 훌쩍 넘어선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유언비어는 비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것을 낳는 것은 우리 사회이며 우리 자신이다. 따라서 비정상성 때문에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그 비난은 유언비어에게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행해져야 한다.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굳이 비정상적인 형태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 사회현실이 그리고 그런 사회현실을 조장한 우리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메스를 대야할 것은 유언비어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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