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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 백수 취임(?)

뉴스가 있는 풍경

by 망명객 2009. 2. 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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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대학가에 있다 보니, 대학 4학년 학생들의 한숨소리를  쉬이 듣곤 합니다. 지난 연말, 마지막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던 제 후배가 답안지를 제출하며 "이제 대한민국 청년실업자에 제 머릿수를 더하세요"라고 말하더군요. 썩쏘를 날리며 시험장을 나서던 후배의 축 처진 뒷모습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오늘 후배들 동아리방에 들렀더니 졸업식과 함께 백수 취임식이 열린다는 공지가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더군요.


이제 곧 졸업식 시즌입니다. 올해에도 학교 정문에선 꽃다발 판매상들이 진을 치고 있겠죠. 아울러 축하의 자리에 함께할 가족들의 행렬도 여전할 겁니다. 그러나 정작 졸업식의 주인공이어야 할 졸업생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특히 올해에는 같은 졸업생이더라도 취업에 성공한 자와 그러지 못한 자 사이에 극명한 흑백 대비가 예상됩니다. 물론 이를 바라보는 가족들에게도 명암이 드리우겠죠..

갑자기 제 고등학교 졸업식이 떠오릅니다. 절친힌 친구 녀석이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졸업식에 나타나지 않더군요. 긱스의 "그땐 그랬지"의 노래 가사처럼, 대학만 들어가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 생각했던 당시가 아직도 아련합니다. 아마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는 제 후배들도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겠죠.

요즘 대학가에선 9학기가 대세입니다. 물론 예전에는 저처럼 공부를 못한 애들의 전유물이던 9학기가 지금은 취업을 위한 필수 코스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부러 교수에게 A학점을 F로 처리해 달라 부탁하는 예비 졸업생들도 부지기수랍니다. 이미 지난 학기에 올 2월 졸업을 공표하던 한 후배도 결국 한 학기를 더 결심하더군요. 그 친구는 지난 설날에 집에서 무슨 이야길 꺼냈고 어떤 이야길 들었을까요.


후배들 동아리방 한 켠에 게바라의 포스터와 학교 근처 식당 전단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결국은 먹자고 공부했고 살자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먹고사는 그 길이 너무 험한 길이라 느끼고 있는 게 이 땅의 예비 대학 졸업자들의 심정일 겁니다. 아마 게바라 선생도 다 같이 먹고살고자 혁명을 했겠죠.

학교로 출강 나온 한 386 연배의 선배는 제 앞에서 그런 이야길 꺼내더군요.

"난 수업 들어가면 애들 욕부터 해. 현 세상에서 가장 취약한 바보들이 바로 대학생이야. 얘네들이 데모를 해, 그렇다고 연대를 해. 그저 지들 잘난 맛에 살다가 그렇게 당하는 거야."

글쎄요. 교단 위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답답하겠죠. 하지만 더욱 답답한 건 바로 묵묵히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이 아닐까요. 물론 선배의 이야기 중 일부는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학점, 토익, 연수, 인턴, 봉사활동 등 수많은 활동으로 직장인보다 바쁘게 뛰어다는 게 요즘 대학생입니다.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완벽한 인간형을 구현하려니 포장은 그럴싸 하지만 그 속 알맹이는 허당인 경우가 많다는 거죠.

물론 모든 대학생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구직자는 넘쳐납니다. 좋은 인재를 뽑고자 하는 게 기업의 욕심인데, 기업의 눈 높이에 맞추려니 대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다양한 활동들로 자신의 이력서를 꾸며갑니다.

졸업을 미룬 후배들이나 이번에 졸업하는 후배들이나, 모두의 앞날에 축복만이 가득하길 빌어주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겠죠.

이렇게 남 이야기처럼 글을 쓰고 있지만, 정작 제 앞가림도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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