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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210, 죽음

일상다반사

by 망명객 2004. 12. 1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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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마음으로 술잔을 들고 있을 때, 잠깐 귓가를 스치는 건 경보 사이렌이었다. 그래, 난 삶의 경고음을 들었다. 우리 일행 모두는 그 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무거운 맥주잔을 들어올렸다. 그 잔이 바닥을 들어낼 때 쯤 매케한 내음과 천장 따라 흘러가는 연기.

2004년 12월 10일, 경박했던 내 자신이 미웠던 날. 난 강남역 화재 사건 현장인 '크레이지 호프'를 채운 50여 명의 손님 중 한 사람이었다.

화재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가게 안쪽 손님들부터 재빨리 반지하 호프집을 빠져나갈 때였다. 천장에 매연이 차오르고 있었지만, 화재현장치곤 꽤 싱겁고도 덤덤한 상태였다. 쥐포 안주와 담배를 주머니에 챙기고 일행과 함께 난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담배는 챙겼지만 정작 내 목을 두르고 있어야 할, 어머니가 보내준 목도리는 현장에 두고 나왔다.

일행은 다음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너무나 침착한 대피에, 차마 사람이 죽을 수 있는 화재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우리 일행이 대피한 그 현장에서 한 사람이 죽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뉴스를 통해 그 소식을 듣게 됐다.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그리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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