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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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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명객 2008. 4. 1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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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인플레이션 시대라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생 중 열의 일곱 정도가 대학을 진학하는 시대. 그들 중 다시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석박사 과정생으로 대학원 진학을 한다. 진심으로 학문이 좋아 진학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자기 실력을 쌓으려 진학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요즘엔 업무의 연장으로 대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도 많다. 각종 특수대학원들이 저녁 과정을 열어두고 그러한 사회적 수요를 받아들이고 있다.


어릴 적 생각하던 박사란 사회적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동네 어귀에 걸린 '누구네 집 몇 째 딸 아들 박사학위 취득'이란 문구의 현수막은 내게 박사에 대한 아우라를 키워주었다. 그런 아우라는 대학을 다니면서 깨졌다. 어차피 박사도 사람이라 걔들 중 일부는 고딩 때 씹어대던 학생주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다시 박사에 대한 옛 아우라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학문적으로 취해야 할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힘든 과정을 거치며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존경심마저 깨져버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함께 뒷담화를 까대던 교수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박사과정생, 혹은 박사들. 그렇게 천둥벌거숭이마냥 잘난 인간들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을 혼잣말로 되뇌인다. 문제는 자기 혼자 살겠다고 후배를 사지로 내모는 인간들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거쳐간 사람이기에 선배라고 부를 터. 그런데 그들 중 자기가 당한 일을 후배에게 강요하는 인간들이 있다.  안타깝거나 미안한 일을 시킬 때, 그에 상응하는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던져주는 게 인간사의 도리다. 하다못해 술 한잔, 밥 한끼라도 사주는 게 선배의 도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의 등에 칼을 꽂는 인간들이 있다.


어차피 널린 게 석사고 채이는 게 박사인 세상이다. 대충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세상 아니던가. 다시 파이터의 기질이 되살아난다. 어느 프렌드처럼 피지컬한 파이터 말고, 피곤하니 그저 세치 혓바닥으로도 충분한 파이터 말이다. "난 네가 학석사 시절에 한 짓을 알고 있다"는 류의 치졸한 화살촉을 지닌 혓바닥말이다. 선배? 박사가 되고 선배가 되기 전에 인간부터 되어야 도리다. 개와의 싸움은 개답게 싸워줘야 제맛일 터. 다시 혓바닥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미시적인 일에 천착하는 삶은 피곤하다. 존경하는 선배는 그런 기억들을 지녀봤자 내 손해라며 한잔 술에 잊으라 한다. 그렇다고 개싸움을 포기할 수는 없다. 복수의 기회는 단 한 차례라고 했던가. 그렇게 복수의 날을 기다리며 날을 벼릴만한 깜도 아닌 것에 난 이리도 분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