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사망 소식에 대한 단상
지난 97년, 대학 신입생이던 나를 하숙방에서 깨운 건 근처 지역 철거대책위원회에서 울리던 민중가요였다. 아침 7시마다 울리던 그 노랫소리를 기상곡 삼아 하루를 열곤 했다. 그 해, 행당동에선 용역과 철거민의 거친 싸움이 있었다. 용역에 의한 성폭행 사실이 공공연한 사실로 거리의 유인물을 채우고 있었다. 전농동에선 철거민과 용역과의 싸움에서 한 사람이 죽어야만 했다. 철거촌이 행당동과 전농동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 건물이 웅장하게 들어선 금호동 일대가 모두 철거촌이었다. 종암동과 봉천동, 북가좌동뿐만 아니라 수원 권선지구란 지명도 기억의 끝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대학생 농활이 농민학생연대활동에서 농촌봉사활동으로 읽혀가던 무렵, 빈민학생연대활동의 준말인 빈활은 늘 긴장감과 폭력의 ..
뉴스가 있는 풍경
2009. 1. 20. 1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