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김소진이나 박완서의 소설 제목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극도로 심심했던 영화 제목은 더더욱 아니다. 바로 내 자전거를 훔쳐간 사람.
모든 게 순조로운 하루였다. 일요일답지 않게 일찍 일어났으며, 일요일답게 대대적인 청소를 진행했고, 일요일이니 일주일을 수고한 내 자신을 위해 이사온 후 처음으로 음식배달을 시켰다. 늦은 계절갈이를 위한 빨래는 오늘도 이어졌고, 기막하게 좋은 날씨에 신발 밑창과 운동화 빨래도 단행하리라 마음 다지며 비우는 탕수육 한 그릇까지도 좋았다. 적어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섬유유연제를 떠올리며 생활잡화를 구입하러 나가기 전까지는 모든 게 밝음으로 가득한 일요일이었다.
잡화구입은 마트를 이용하겠노라 나섰다. 그런데 분명히 옆 빌딩 구석에 있어야 할 자전거가 없다. 제길... 무언가를 잃어버려 허둥대던 지난 밤 꿈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직 두 달이나 남은 할부기간도. 나쁜 일은 늘 한꺼번에 들이닥치지 않던가.
경찰? 한 번이라도 자전거를 잃어본 사람들은 안다. 신고한다고 잃어버린 자전거를 되찾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그래,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었으니 잃어버릴 수도 있다. 너무 채념이 빠른가? 다시 방으로 올라와 자전거를 잃어버린 사실을 잊고자 한다.
그래, 다행스레 그리 고가의 자전거는 아니었잖아. 맞아, 일반 스틸 자전거라 신고해도 찾기 힘들어. 자전거에 짐칸이나 후레쉬 같은 악세사리를 달아준 것도 아닌데 뭘. 그러나 구입한 지 한 달이 넘지 않은 사실이 떠오르고, 그 사이에 뒷바퀴 체인톱을 한 번 갈아준 사실이 떠오른다. 이윽고 다시 두 달이나 남은 할부기간이 떠오르며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전화기 버튼 112를 누른다.
신고전화 후 곧바로 경찰관 둘이 집을 찾았다. 대략의 설명으로 도난신고 접수를 마치고, 큰 기대는 하지말라는 이야기를 덕담처럼 듣는다. 제길...
그래, 김소진의 소설처럼 몸매 좋은 에어로빅 여강사가 내 자전거를 훔쳐갔으면 용서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 속 그녀는 자전거를 훔쳐 타기만 했지, 직접 훔쳐간 건 아니잖는가. 드라마나 영화처럼 소설도 소설일 뿐. 누군가 훔쳐간 내 자전거는 돌아오기 힘들 것이다.
다시 동네가 낯설어졌다. 익명의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이곳. 정 좀 붙이고 살려니, 이런 식으로 사람을 애 먹인다. 자전거가 없어 불편할 일들이 연속적으로 떠오른다. 당분간 맨손체조만 해야 할 상황이 싫어진다.
제대로 된 아홉수를 견딘다.
훔침만 당하는 아홉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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