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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단...

일상다반사

by 망명객 2005. 2. 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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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구, 부산, 광주, 대전 그리고 다시 서울. 역마살이 살짝 도지려 할 때는 살짝 떠나는 법.



3년 만에 찾은 대구, 금강 휴게소의 얼어붙은 강가에 눌러앉은 어둠의 운치보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란 달갑지 않은 이름을 맞닥뜨리게 된다. IMF 때보다 더욱 어렵다는 작금의 경제현실을 고려할 때 '국채보상운동'이란 이름에 대한 나의 싸늘한 태도는 너무나 당연하다.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단 뉴스 보도를 접할 때마다, 결국 고통분담이란 힘 없는 자의 몫이고 보이지 않는 착취의 이데올로기일 뿐임을 되새기게 된다. TK로 상징되는 한국 보수의 원조 고향이란 간판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구의 모습이겠지만 일제시대의 비밀결사운동과 해방 직후의 10월 봉기 그리고 1960년 2.28 학생의거를 기억하는 이는 얼마나 있을까? 전라도에 대한 이미지가 동학농민운동과 1980년의 광주 그리고 김대중으로 굳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대구의 이미지도 조작이고 날조이겠지.

부산으로 내려가던 고속도로 위에선 2km 정도의 간격으로 세워진 과속 감시 카메라가 인상적이었다. 대구에서 본 지방뉴스에서는 대다수의 카메라가 빈 카메라라고 하던데, 아무튼 조심하고 볼 일 아니던가. 역시 3년 만에 찾은 부산, 아직도 부산 발 제주 행 카페리는 저녁 7시에 부산항을 떠날 것이다. 3년 전 초여름, 그렇게 제대군인의 신분으로 카페리 위에서 바라본 부산은 검은 산들의 그림자 경사를 따라 다닥다닥 건물들이 들어선 피곤함의 도시였다. 물론 3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부산의 거리에선 이질적인 사투리가 들려오고 방향감각을 상실한 난 단순 방문객일 뿐이었다. 물론 큰 기대도 없었지만 항구도시를 방문하고 바다 한 점 바라보지 못했다는 건 아쉬움이다. 

부산의 다음 기착지는 광주. 한 선배의 고향으로, 선배 부모님의 부음을 듣고 달려갔던 곳이다. 그리고 입대 직전 머리를 짧게 자르던 곳. 그렇게 우울한 기억이 많이 묻어난 도시에 도착했으나 아직 진행중인 대한민국 도시화에 따라 광주시청으로 기억하던 옛 도시가 아닌, 넓은 도로와 아파트 단지들이 곳곳이 들어선 신도시에서 부산과는 또다른 이질적 사투리를 접하게 된다. 우울한 기억에는 자연스레 술이 따르는 법. 광주 시내와의 거리를 물어보니 술집 종업원은 원래 서울 목동 사람이라 자신은 광주 지리를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래 어차피 당신이나 나나 이 곳은 낯선 도시일 뿐이다. 그저 필요에 의해 찾을 뿐인 곳. 그저 우린 자연스레 흘러갈 뿐이다. 필요에 의해 찾은 곳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라며 혼자 도리질을 쳐본다.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대전을 향한다. 대구와 부산, 광주를 거치며 유랑의 생활이 몸에 익었는지 일행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는 개인 시간을 가져본다. 대구에는 초등학교 동창과 대학 선배가, 부산에는 군대 후임병과 대학 선배와 동창, 광주에는 역시 군대 후임병이 살고 있었지만 그저 일 보러 내려와서 내 심심함을 달래달라고 그들을 불러내는 것이 미안했다. 물론 보고싶기 때문에, 생각이 나기 때문에 그들에게 연락을 취할 순 있다. 하지만 내 이기심인지 아니면 진정한 그리움인지 구분할 수 없는 감정 상태로 그들에게 연락할 순 없었다. 사람이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듯 그들의 존재 자체는 자신의 생활권 내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녀석은...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건 상대가 고향 친구녀석이다. 어느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어버린 녀석은 그래도 대전에 들렀는데 연락 한번 하지 않은 걸 알면 누구보다 서운해할 게 뻔하기에 연락을 취했다. 옛 친구와의 만남은 조금 소모적일 수도 있다. 함께 공유하는 과거의 기억이 술안주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녀석과의 만남은 늘 현재 진형형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제 곧 결혼을 앞 둔 녀석은 술자리 위로 아직 내게는 먼 고민들과 생각들을 풀어낸다. 그리고 난 내 이야기를 꺼내고... 공통점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조금 더 안정된 삶을 위해 이젠 결혼을 해야겠다는 녀석은 결혼식 사회를 내게 부탁했다. 난 그저 빙긋 웃으며 그 때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결국 올 것이 오는 것인가... 심란하군... ㅋㅋ

전국을 한 바퀴 빙 돌았다. 말 그대로 유랑단 생활. 진짜 유랑단은 돌아갈 곳이 길밖에 없지만 우리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귀 시린 겨울 저녁 서녘에 걸린 노을 빛처럼 따뜻하다. 밀린 빨래거리만 가득한 가방과 피곤한 육신 그리고 약간의 감상을 갖고 돌아왔다. 서울... 이제 조금은 익숙하면서도 지독히 이질적이며 영원히 익명으로 남을 공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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