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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의 기억

일상다반사

by 망명객 2009. 8. 1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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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려나간 반도의 여름은 뜨겁다. 피서지를 찾아 오랜만에 이용한 경춘선 열차는 여전히 청춘의 꿈과 사랑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타인들이 빚어낸 꿈과 사랑에 무임승차하며 달려간 곳은 가평. 역전에서 다시 승합차를 얻어타고 들어간 곳이 북면에 위치한 어느 계곡변이었다. 경기도 북서지역 변경, 일행이 짧게나마 더위를 피해 달려온 곳이다.

두 눈을 찌르는 주변 산하의 초록이 내리쬐는 태양볕을 피할 그늘을 제공해준다. 폭염에 휩싸인 대지 곁으로 힘차게 달음질치는 계곡물의 굉음이 청량하다. 적당한 끼니와 적절한 음주 후 낮잠을 즐기던 일행 사이에서 난 어느 처사의 관념이 빚어낸 여행 수기를 펼친다. 이 여름, 지상에 묶인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로 보내는 몇 시간이 너무나 달콤하다.

8월 중순, 사방의 진초록은 태양볕에 달궈져 태생적으로 간직했던 흙의 색을 곧 내비칠 태세다. 이제 그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빨래줄 위에 나란히 자리한 잠자리들은 한 여름의 폭염을 기억한 채 가을을 맞이하겠지. 2박 3일, 이 찰나의 이미지들은 회색의 도시에서 성마른 그리움으로 날 괴롭힐 것이다. 나이가 들어 좋은 건 그리움을 그리움만으로 삭힐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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