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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 천공의 성

일상다반사

by 망명객 2009. 9. 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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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새벽에 나선 즉흥적인 통영 여행길은 고속도로 위에서 소매물도로 향하는 뱃길로 이어졌다. 서호시장 시락국으로 아침 해장을 한 뒤 충무김밥을 도시락 삼아 떠난 뱃길이었다. 여름과 가을의 계면에서 만난 남녘 바다는 오색 등산복의 여행객들만큼 들떠 있었다. 통영 앞바다의 섬과 섬, 그 사이를 달리길 1시간 반만에 여객선은 소매물도에 닿았다.



소매물도 정상인 망태봉은 해발 152미터. 선착장부터 망태봉까진 고작 0.75킬로미터. 경사가 급한 비포장 길을 오르는 건 하이힐을 신은 아가씨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더더욱이 짧은 치마를 입었다면 그녀와 그녀의 건장한 애인은 선착장 근처의 짧은 산책로를 둘러보는 것으로 소매물도 관광을 마쳐야 한다.



망태봉에는 밀수선을 감시하던 세관 감시대가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놓고 있다. 바다 위,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곳은 감시대라기보다 '천공의 성'이다. 천공의 눈은 먼 바다와 가까운 섬을 응시한다. 하늘에는 구름과 갈매기를 제외하곤 시야를 가리는 게 없다. 그래서 하늘은 천공의 시선에겐 재미 없는 피사체이다. 내려다 보는 시선은 쉽게 의심을 품곤 한다. 그 시선에는 오만함이 녹아 있다. 그래서 이는 고독한 시선이다. 상호 교통 없는, 일방적인 시선이 내려다 보는 시선이다. 비판보다 연민으로 이를 올려다 보자. 물론 올려다 보는 자에겐 그만한 여유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등대는 2500개가 넘는다. 이들은 365일 동안 약 1백만 번씩 불빛을 깜박이며 뱃길을 밝힌다. 각 등대는 각기 다른 점멸 주기를 갖고 있다. 개별 등대가 지닌 고유한 주기적 기호체계. 그 사이에서 바다는 잠들고 선박은 항로를 검증한다. 등대섬 등대 불빛과 인근 도서 등대 불빛이 엉켜 한밤 천공의 시선에 눌러붙을 터이다.



한려수도가 빈 창 구멍을 액자삼아 펼쳐지는 이곳은 소매물도 천공의 성. 내려다 보는 자의 숙명이 앙상한 뼈대의 폐허로 드러난 곳. 당신과 나의 시선이 어긋나며 각자 카메라에 풍경을 오려넣는다. 높낮이와 각도는 각자 다르지만, 술잔 마주했을 땐 쉽게 교통하는 게 친구의 시선이라네. 내려다 보거나 올려다 보지 않는, 그런 수평적 시선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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