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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때를 알고 내리는 비와 같다 - 영화 호우시절

피드백(리뷰)

by 망명객 2009. 10. 1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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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시절(好雨時節)'이란 제목에서 장마철을 떠올린 건 순전히 내 인문학적 소양 부족 탓이었다. 호우주의보나 호우경보란 단어 조합과 기상캐스터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영화 제목에서 연상됐다. '때를 맞춰 알맞게 내리는 비'가 국어사전에 등재된 올바른 '好雨'의 뜻이다. 호우의 유래가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싯구였듯 지진으로 폐허의 무대가 된 스촨성의 두보초당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일상에서 지나치며 흘려 듣던 광고 카피 같은 이야기를 내 면전에서 꺼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의 조합은 늘상 불완전하다. 옛 연인과의 우연한 재회, 불완전한 기억이 추억의 편린들을 쏟아놓는다. 두 주인공의 사랑이 어떻게 엇갈렸는지, 누가 누굴 좋아했고 둘 사이에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는 영화를 보는 이에겐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때를 알고 내리는 비처럼 두 사람은 적절한 시기에 조우했다. 오로지 그 사실이 중요하다. 두 주인공은 엇갈리고 불완전한 기억 사이에서 다시 설렘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반복적 삶의 안온한 일상 속에서 영화 속 영화 속 동하와 메이처럼 다시 설렘을 만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잠시 잊고 있던 옛 꿈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속에서 옛 꿈을 공유했던 이와의 조우는 그래서 반갑고도 쓸쓸한 일이다. 꿈만으론 먹고 사는 일이 불가능하단 걸 알아버린 순간, 그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래도 인간은 과거를 반추하며 살아간다. 그 시절의 옛 동지들이 연말이면 거리 위에 넘쳐난다. 이는 서로의 얼굴 위에서 못 다 부른 옛 꿈을, 늙어가는 것의 비애를 확인하는 숭고한 작업이며 그 시절의 설렘을 다시 만나기 위한 주술행위다.

'호우'의 동음이의어는 좋은 벗을 뜻한다. 메이와 동하, 두 주인공이 때를 맞춰 알맞게 내리는 비처럼 서로에게 좋은 벗으로 남길 빈다. 함께 술잔과 수다를 나눌 벗들도 좋지만, 이 가을은 외로운 중년 남녀들에게 또다른 종류의 설렘을 안겨줄 좋은 이성친구가 필요한 계절이다. 배가 좀 나왔고 머리숱이 줄어들었고 피부의 탄력도 예전같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설렘이 그 어떤 자양강장제나 화장품보다 더 큰 젊음을 안겨줄 것이다.

아, 불륜을 조장하자는 게 아니다. 당신이 당신의 배우자나 애인에게 가끔은 낯설게 다가설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전, 서로가 서로에게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 그 때의 기억으로 중년 남녀는 귀환활 필요가 있다. 상대가 주책바가지란 소릴 한다면 또 어떤가. 난 아직도 당신 덕에 설레고 있다는 걸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영화는 잡히지 않는 꿈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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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허진호의 영화를 늘 극장 구석에 위치한 좌석에서 벽을 벗한 상태로 관람하곤 했다. 벽을 의지해야만 볼 수 있는 영화가 내게는 허진호의 영화였다. 호우시절은 좀 달랐다. 두보초당의 대나무숲 속 속에서 '봄날은 간다'의 은수가 뛰어나올 듯했다. 동하와 같이 그 길을 걷던 메이에겐 빨간 신호등 불빛과도 같은 은수의 목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호우시절은 좀 많이 달랐다.

Thanks to C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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