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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피드백(리뷰)

by 망명객 2004. 12. 23.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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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한겨레신문사, 2004

'정문태', 내가 이 이름을 처음으로 들어본 게 99년 말 내지 00년 초였을 것이다. 어느 술자리에서 사빠띠스타를 취재하러 멕시코로 떠나겠다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선배의 입을 통해 미얀마 학생민주전선을 취재하고 있는 한겨레신문 기자의 존재에 대해 알게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4년 12월, 나는 지난 몇 년 전 술자리에서 얻어들었던 이름이 표지 위에 박힌 책을 읽게되었다.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어떤 호기심이 이 책으로 날 이끌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글쎄, 일단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과 그 극단 속에 제3의 관찰자인 기자란 존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인지도 모르겠다. 언론은 전쟁을 먹고 산다. 그리고 그 전쟁통에 뛰어든 종군기자는 전쟁을 먹고 살아가는 승냥이 같은 존재. 평소 전쟁과 언론의 상관관계를 고려해 갖고 있던 이런 생각과 감상적 동경 사이에는 지독한 자기모순이 존재한다. 전쟁을 혐오하면서도 로버트 파카, 유진 스미스, 에디 애덤스, 팀 페이지와 같은 사진기자들이 남긴 작품을 보면서 그들이 누빈 환경에 대한 부러움을 함께 지니고 있어서랄까. 어쩌면 포토저널리즘과 일반 저널리즘 사이에 이중 잣대를 들이대었는지도 모르겠다. 임베드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이 내게 전선기자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강요했을 것이다. 아무튼 책장을 넘기면서 갖은 모순적 사고 속에 불편함을 갖고 이 책을 읽어야했다.


<그러나 전선이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건 '역사적 현장에 내가 서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아니었던가 싶다. 그 역사가 굴러가는 현장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볼 수 있는 대가로 나는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다. 사람들이 사지로부터 빠져나오는 전선을 거꾸로 기어들면서 나는 늘 내 존재를 역사 속에 집어넣었다. 그게 나를 위로하기 위한 방법이었는지 아니면 어떤 착각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p.21>


<만남과 헤어짐, 그 일상적인 행위가 전선을 뛰는 내겐 늘 고역이었다. 정에 약한 나는 '만남이 곧 이별'이라는 이 바닥 생리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냉정함을 배워야 했고, 사람보다는 일을 먼저 생각하는 기계적 습성을 익혀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전선의 '냉랭함'이 내가 살고 남을 살릴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았다. p..177>


그가 어떤 이유로 제3국의 전쟁터를 휘젓고 다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책을 통해서 하려는 이야기는 사지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후일담 류의 영웅담이 아니라 제3의 관찰자로서 전쟁터에서 느껴야했던 기자의 당위성과 인간적 고뇌일 것이다. 그의 당위성과 고뇌는 그 자신을 '종군기자'로 분류하기를 거부한다. 종군기자란 어휘 자체가 갖고 있는 전쟁과 군대를 따라다니는 언론은 죽은 언론이라는 것이다. 언론과 전쟁은 적대관계여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당연한 원론적 이야기인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기자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 나는 그런 식의 말들을 믿지도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그 '중립'이란 말은 백인·기독교·자본주의·서양중심주의로 무장한 국제 주류언론들이 떠받드는 신줏단지였다. 그이들은 그 단지 밑에 숨어 자본을 증식해 왔을 뿐이다. 그런 국제 주류언론들 입장에서 벗어나면 지금까지 어김없이 '중립성' 논란이 일었고 그 당사자는 몰매를 맞았다. p.172>

<전선기자로 내가 따를 '중립'은 내 발에 차이는 '사실'뿐이다. p173>

그래, 언론의 공정성, 중립성, 불편부당성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사 자신이 창조해낸 공정성이란 신화는 사건의 표면만 다루는 단순 전달의 허울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 취재원 목숨과 직결되는 자가검열은 전선기자들의 기본수칙이기도 하다. '내 기사가 전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내 기사가 취재원들 생명과 직결되는 건 아닐까?' '내 기사가 취재원의 적을 이롭게 하지는 않을까?' 이런 것들을 놓고 전선기자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p.313>

어떤 문제를 기사로 다룰 것인가, 게이트 키핑의 1단계는 바로 취재기자 그 자신이다. 어쩌면 정문태 기자가 자기 발로 제3국의 전쟁현장들을 누비고 있는 이유는 게이트 키핑 과정 중 외압으로 작용하는 여러 요소들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국내기자에 비해 외신기자는 국경을 넘어 온 철저한 제3자일뿐이니까. 결국 자기검열 기재가 작용한다는 것은 완벽한 중립성이란 존재하지 않음의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좋은 기사는 발로 쓴 기사이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인도네시아,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 캄보디아, 코소보 등을 직접 발로 뛰며 수집한 정보는 사건과 결합해 심층적인 기사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노력했던 정문태 기자, 그의 책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제3국에 대한 내 관심과 지식이 얼마나 얕은 것이었는지를 깨닫도록 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보유통 과정에 제3국이 얼마나 소외되어있는지, 문화제국주의의 구체적 예로 현재의 '나'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정작 우리들은 강대국 중심의 편견 속에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나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중심은 그 어떤 언론현상도, 전선기자의 고달픔도 아닌 지독한 휴머니즘이 아닐까.

올해 여름 워싱턴DC에 있던 Newsium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 야외 공원에는 현장에서 죽어간 전선기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기념비가 세워져있고 그 기념비 한쪽 구석은 빈칸으로 앞으로 죽어갈 전선기자들의 이름을 기다리고 있다. 부디 이 기념비 위 명단의 진행이 영원히 멈추어지길...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상세보기
정문태 지음 | 한겨레신문사 펴냄
통틀어 가장 많은 전선에 참여한 전쟁기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이...죽음이 교차하는 치열한 전선에서 전쟁의...까지 보도하는 종군기자들의 세계와...개인으로서 느낄수밖에 없었던 전선의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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