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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피드백(리뷰)

by 망명객 2004. 12. 30.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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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형 작,연출
대학로 (구)바탕골소극장
2004/12/24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머리말 中

가끔 영화관을 찾는 게 식상해지거나 소극장에 대한 그리움이 피어오르면 난 연극을 보러간다. 특히 날씨가 추워질 때, 무대와 관객의 거리가 바로 지척이라 배우와 관객 모두가 소통의 열기에 쉽게 달아오르는, 그래서 추위에 오그라든 내 심신을 쉬이 풀어주는 소극장은 빼놓을 수 없는 도피처이자 휴식처이다.

'청춘', 언젠가부터 난 자못 신파조로 들리는 이 단어에 집착하게 됐다. 소설책에서, 미디어에서 혹 어느 노래 가락에서 청춘은 늘 경외의 대상이며 알싸한 추억이 어린 낱말이다. 가끔 후배들의 물음에 '그땐 그랬지'라고 응하는 애늙은이가 되어버린 내가 이 연극을 보고 싶어했던 건 너무 당연한 귀결이리라.

"청춘예찬" 흑백의 포스터 위의 빨간색 타이틀은 엄앵란·신성일의 시대를 품고 있다. 추억의 마케팅이리라. 그렇다고 연극 자체가 추억을 헤집을 만큼 철지난 이야기이거나 과거의 한때를 다루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현재 이 땅위를 밟고 서 있는 청춘들과 그들을 둘러싼 현실 진행형의 이야기였다. 청춘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인지, 삶과의 공존을 위해 얼마나 많은 투쟁이 따르는지 무대 위에서 알려주고 있었다.

결핍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시간. 사랑, 돈, 꿈, 그 모든 것들의 결핍. 결국 욕망이 결핍이란 이름으로 거세어질 때, 우리는 쉽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극단으로 자신을 몰아가거나 스스로의 아집에 침잠한다. 물론 이는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갈 순간적 일탈이다. 희망을 통해 담담하게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삶 자체가 생명 행위인데 어찌 생명을 거스르리요.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인 희망. 결국 청춘이 아픈 건 멀리 내다보지 못함이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희망 때문이리라.

그렇게 아픈 시간이 흐르고 나면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와 같이 추억하며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와 같은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게 삶이니까.


- 지금까지 관람했던 연극 중 배우들의 흡연 양이 최고인 연극. 담배 냄새 싫어하는 분은 특히 관람을 삼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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