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피드백(리뷰)

by 망명객 2005. 3. 9. 10:09

본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 한강, 열림원, 2003


"사랑이 아니면..."
.............................하고 마흐무드는 중얼거렸다.

"생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는 덧붙여 말했다.

"사랑 없이는 고통 뿐이라구."

"하지만 때로는"
...............................하고 나는 반문했다.

"사랑 그 자체가 고통스럽지 않나요?"

...............................마흐무드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지, 그렇지 않아."
...............................그의 음성은 숙연했다.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고통스럽지.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
사랑 그 자체는 그렇지 않아."


내 오감은 지난 겨울 내내 봄 소식에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온 몸을 돌던 수분은 옷매무새를 뚫던 바람이 훔쳐가 말 그대로 건들이면 부서질 것 같은 푸석푸석한 시간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리라.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하던 자유로운 영혼은 술잔에서도 그 어느 낯 선 거리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새천년의 겨울은 늘 그렇게 푸석푸석한 시간을 견디는 시간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눈썹, 화장기 없는 얼굴, 『여수의 사랑』과 『내 여자의 열매』의 책 날개에는 그렇게 수수하면서도 두 눈은 유난히 빛나던 한강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절제된 어둠을 유난히 좋아했다.

『사 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한강의 산문집은 그녀의 여타 소설에 비해 따뜻함을 머금고 있다. 주변 인물들에 대한 열린 시선과 관심, 그녀는 이 책날개에서는 활짝 웃고 있다. 여전히 수수한 모습 속에서 특별한 영혼을 상징하듯 빛나는 눈빛을 품고 있다.

기 억에도 온도가 있다. 생각할수록 싸늘해지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돌이킬수록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기억이 있다. 돌이킬수록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기억, 그리고 싸늘해지는 기억조차 다시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 그녀의 글귀들이 봄이 오는 길목에 한 줄 따뜻한 봄 햇살처럼 내 마음을 보듬고 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