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Wit - 콤마, 그 숨고르기의 순간이 있기에 죽음이여 자만하지 말라

피드백(리뷰)

by 망명객 2005. 3. 14. 00:32

본문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공연일시 : 2005. 2. 11 ~ 3. 27
* 공연장소 : 우림청담씨어터
* 제작 : 송승환, 이광호
* 원작 : Margaret Edson
* 연출 : 김운기
* 관람일 : 2005. 2. 25


아직 뇌가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조금 이른 아침 9시, ‘오늘 컨디션 어떠세요? 기분은요?’ 밝고 높은 여강사의 목소리는 창문 가득한 낮은 회색 구름들과 확연한 대비를 이루며 고막을 때려댄다.

연극 위트 또한 그랬다. ‘안녕하세요. 오늘 컨디션 어떠세요?’, 윤석화의 목소리도 그녀의 환자복과 대비를 이루며 내 고막을 때려댔다. 이제 두 시간 뒤면 무대 위 자신은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독백은 죽음의 시기를 알고 있는 시한부 인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냉소가 느껴졌다. 교수라는 극 중 인물의 지적 치기에서 오는 냉소이리라.

‘난 나를 넘어섰다’, ‘역사는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에게 늘 열심히 살 것을 강요한다. 열심히 달리는 그 끝에는 성공이란 열매가 있다지만 성공이란 매우 달콤하면서도 냉정한 이중성을 지닌다. ‘내가 왜 이렇게 살지?’, 열심히 달리던 그 끝, 주변에 친구 하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허무함은 그 어떤 성공의 달콤함으로도 달랠 수 없는 것이리라.

문득 어느 소설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친구의 부음을 듣고 달려온 주인공은 죽은 친구의 살아생전에 그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 본 적이 없었다고 읊조린다. 극 중 베어링 교수 또한 그랬다. 상아탑의 세계에서 자신이 연구하던 '존 던'의 시 세계에 빠진 그녀는 주변인들에게 소홀했고 쉰 살이 되도록 혼자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던 그녀의 삶에 ‘난소암’이라는 신파조의 구름이 갑자기 찾아들었다.

극은 결국 그녀의 죽음으로 마감한다. 죽음의 그늘 밑에 서 있는 그녀에게는 ‘안녕하세요. 오늘 컨디션 어떠세요? 기분은요?’ 라 물으며 그녀를 한 명의 환자로만 대하는 병원 사람들만이 있었다. 예외라고는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녀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내주는 간호사 정도일까.

고등학생 시절, 어느 친구가 선물로 건내준 시집 속지 위에 쓰여진 ‘삶과의 투쟁이 아닌 공존으로...’ 라는 글귀를 떠올리게 되었다. 난 삶은 투쟁이 연속이고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라 생각하며 그 글귀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공존과 투쟁이 꼭 대척점에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투쟁이지만 그 과정은 사람들과의 공존이란 룰을 따라야 한다는 것. 그게 삶이다.

함께 연극을 본 친구, 그 친구도 참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였다. 2년 전이던가 말다툼 끝에 서로 연락을 끊고 지내던 그 친구가 어느날 내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지난 시간 무엇인가를 쫓아 주변을 돌아볼 새도 없이 열심히 뛰었다는 친구. 그렇게 바라던 그 무엇인가를 손에 쥐었을 때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다시 메일을 보내온 친구의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죽음은 자만하다. 이 세상 생명은 모두 유한한 존재이기에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늘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기억하자. 세상의 죽음이 모두 기쁠 수는 없지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그건 콤마, 즉 숨고르기의 순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and death shall be no more (콤마) death thou shalt die"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