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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죽고 싶었겠느냐

일상다반사

by 망명객 2009. 7. 22.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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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아내 '자살'에 각계 "가슴이 미어 터진다" (프레시안, 20090720)
“감옥갈까 걱정…공장서 나오라 애원했는데…” (한겨레, 20090721)


또 한 사람이 죽었다. 이번엔 노동자를 지아비로 둔 주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는 없었다. 수사기관의 공식적인 사인 발표는 없었다. 단, 그녀의 자살을 우울증과 같은 개인적 문제로 축소하려는 시도가 엿보일 뿐. 야당과 민주노총 측은 남편 회사에 불어닥친 정리해고와 그 여파를 자살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각 이해집단들이 발표 성명서가 아니더라도, 한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끊는 건 비극일 수밖에 없다.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더 많을 터이니 말이다.

그녀의 남편은 노조 간부. 그가 15년 동안 일한 회사는 그와 동료들을 '산자'와 '죽은자(정리해고자)'로 갈라놓았다. 노조 간부로서 그녀의 남편이 취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죽은자들'의 곁에서 투쟁에 합류했다. 한 가정을 책임진 가장의 길과 노조 간부의 길은 조금씩 어긋났으리라.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서로 사랑하기에 결혼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가 서로를 삶의 동반자로 여겼기에 한 지붕 밑에서 함께 살게 됐을 것이다. 남편은 일터를, 아내는 가정을 꾸리며, 둘은 함께 삶을 나누고 꿈을 공유했을 것이다. 가끔 그들도 여느 부부처럼 부부싸움이란 걸 했겠지. 함께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끌고 애를 키우고, 여느 가정처럼 그들도 소소한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

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모른다. 그들도 나를 모른다. 단, 그들 이야기가 오르내린 기사 행간을 통해 난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추정할 뿐이다. 한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또 누가 죽을 지 모르는 극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 쌍용자동차다. 살려고 하는 '죽은자'들의 노력과 그 곁에서 이를 못본 채 두 눈 질끈 감는 '산자'들의 죽은 분노나 모두 답답하긴 매 한가지다.

두 어린 아들들을 두고 누군들 죽고 싶었겠느냐. 이 죽음을 그 누가 욕되게 하느냐. 이리도 삶은 욕 된 것을...

누군들 죽고 싶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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