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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구덕

일상다반사

by 망명객 2008. 8. 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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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댁에는 철제 애기구덕이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아버지 7남매를 오롯이 키워낸 것으로도 모자라 우리 삼형제와 사촌 형제들도 모두 그 구덕에서 세상의 모두였던 사각 천장을 응시하곤 했다. 우린 그렇게 늘 흔들리는 구덕 속에서 멀미 대신 꿈을 배웠다.

첫째 숙모님에게는 애기구덕을 발로 흔드는 법을 배웠다. 아마 사촌동생이 갓난아기 시절이었으리라. 숙모님을 따라한다고 애기구덕을 발로 흔들다가 할머니께 혼이 난 기억이 또렷이 떠오른다. 물론 숙모님께 배웠노라는 변명에 숙모님도 덩달아 할머니께 혼줄이 났었다.

집안에 아기가 태어나면 할아버지는 철제 애기구덕의 프레임에다가 손수 붕대를 감아 준비하셨다. 그분의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들이 태반 그 구덕 속에서 세상과 조우했으니, 구덕에 붕대를 감는 준비 과정은 경건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손수 구덕을 흔들며 자장가를 불러주셨다. '웡이 자랑, 웡이 자랑~' 내가 누워있던 구덕은 삼촌들과 고모님의 추억 한켠에도 존재한다. 시끄럽도록 울어대는 아기를 재우기 위해 부단히도 구덕을 흔들어댔다는 게 그네들의 증언 내용이다.

둘째 숙모님은 애기구덕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둘째 숙모님께는 갓난아기의 머리 모양이 중요하단 걸 배웠다. 아마 그때였다. 할아버지는 수십 년 물려 쓰던 애기구덕을 버리셨다.

비록 버려졌지만, 이 대가족의 중심에는 늘 그 철제 애기구덕이 묻혀 있다. 새로운 생명을 가족으로 맞이하고 그 생명을 길러내던 기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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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님 포스팅 '제주도의 애기구덕과 애기 흥그는 소리'를 읽고...

숨비소리님 블로그에는 요리 정보가 가득하네요.
제주도 잔칫집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성게미역국', 외할머니께서 준비하셨던 '꿩메밀탕' 등...
오늘 아침, 제 자취방에는 쌀이 떨어졌건만...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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