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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번째 생일날에...

뉴스가 있는 풍경

by 망명객 2011. 1. 24.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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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눈이 내렸다. 한강 위에 새하얀 도화지가 펼쳐졌다. 강변북로를 달리는 차 안,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재잘거리던 중 접한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부음 소식이 뒷목을 짓누른다. 또 한 분 가시는구나.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고마움의 전화를 올린다. "나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식 생일 불공을 음력으로 챙기는 어머니는 아들의 양력 생일을 잊고 계셨다. 미안함이 담긴 어머니의 '염려+잔소리' 세트를 피하는 법은 단 한 가지. 생일을 맞아 부처님께 인사 올리러 가는 길이라는 이야기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칭찬으로 돌렸다. 참으로 간만에 듣는 칭찬이다. 차안을 울리는 라디오에선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초~ 나쁜 짓을 하면~은~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초~ 우리에게 들~키지"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리영희 선생님의 49재가 열렸다. 법왕루는 입추의 여지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고인의 가족은 물론, 얼음장같은 시대를 함께 거쳐간 사람들과 제자들이 추모의 발걸음으로 법왕루를 채웠다.

구중서 선생과 박석무 선생, 권태선 논설위원에 이어 명진스님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MB가 말한 선진국이 선짓국입니까." 가축 살육과 환경 파괴로 이어지는 욕망의 사슬을 끊고 인간이 서로를 보듬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게 명진스님의 이야기다. 리영희 선생님이라면 극락을 가지 않고 좋은 세상 만드는지 지켜볼 것이라는 내용의 이야기도 그가 꺼냈다. 할머니의 입버릇처럼 내 입에서도 "관셈보살"이 튀어나왔다.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자"던 동기와 선생님의 빈소를 함께 찾았던 게 어느덧 50여 일 전의 이야기다. 선생님은 나와 내 동기가 입학하기 이태 전에 교수직에서 은퇴하셨다. 선생님은 명예교수로 퇴임 후에도 강단을 찾던 여타 교수님들과 달랐다. 건강 문제 때문이었다.

우린 선배들이 기증한 책으로 구색을 갖춘 단과대 도서관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아니, 선생님의 책을 처음 만났다. <인물과 사상> <신문 읽기의 혁명>이 출간되고 <철학과 굴뚝 청소부>같은 책들이 학부생 세미나 현장에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에 선생님의 책은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던 '역사적 유물론'이나 '반 뒤링론' 같은 사회과학 서적들처럼 낡아보였다. 그래도 나와 내 동기는 발품 팔며 헌책방을 돌 때마다 선생님의 책을 사모았다. 우리가 선생님께 갖고 있는 '마음의 빚'이란 선생님의 이야기와 선생님의 텍스트를 현재성이 결여된 '낡은 것'으로 치부했던 치기다.

 

49재가 다시 한번 동문들을 모았다. 제자들은 물론 교수님의 동료 교수셨던 이강수 선생님도 참석하셨다. 이 선생님 퇴임식 자리에서 난 처음으로 리 선생님을 먼발치에서나마 뵐 수 있었다. 리 선생님은 이 선생님의 퇴임을 아쉬워하며 당신이 아는 언론학자 중 가장 선비같은 학자라고 치켜세웠다. 답사에 나선 이 선생님은 평생 진실만을 지키셨던 리 선생님이 오늘 단 하루 거짓말을 했다며 자신을 낮췄다. 학부 2학년생에게 두 분이 주고 받은 이야기는, 학부 2학년생의 눈에는 그저 강호 고수들이 음전으로 자신의 내공을 겨루는 것처럼, 대단해 보였다.

건강상 이유로 절필을 선언한 리 선생님이 일본에서 구입한 원고지를 이 선생님께 남겼다. 그 원고지로 작업한 이 선생님의 결과물이 지난 1월 초에 <뉴스론>이란 책 한 권이 됐다. 이 선생님은 "그 귀중한 원고지에 보잘것없는 내용을 담았으니 그분께 미안할 따름이고 아울러 그 학문적 우정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책 서문 말미에 밝혔다. 현역 교수에서 은퇴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공부하는 학자로 남아 있는 이 선생님도 존경스럽지만, 사용할 이에게 자신의 물건을 남긴 리 선생님의 혜안도 대단하다. 리 선생님의 만년필을 물려받았다는 명진스님은 어떤 작품을 내놓게 될까?


봉은사 길 건너 코엑스에선 '코르다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코르다'를 모르더라도 결연한 표정으로 먼 발치를 응시하던 '체 게바라'의 사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 유명한 체의 사진이 코르다의 작품이다.

패션사진을 찍던 코르다가 혁명을 필름에 담기 시작한 건 뷰파인더 이전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했던 현실의 부조리였다. 97년, 한겨레21 표지 전면에 박혔던 체의 사진과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라!'는 헤드라인이 아직도 생생하다. 장 코르미에가 쓴 '체 게바라 평전'이 3년 뒤에 출판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게바라는 필독서가 됐다. 한겨레21이란 매체를 통해 게바라를 알게 됐으니, 이 또한 리 선생님 덕분이 아닐 수 없군. 쿠바의 속살을 담은 코르다의 작품 앞에서 다시 리 선생님을 떠올린다. 21세기의 서울 강남 한 복판에서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사람을 계속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힘겹다.

 

서점에서 임헌영 선생이 엮은 리영희 선생님 산문선 ‘희망’과 노트 몇 권을 샀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은 의외로 조용했다. 서른두 번째 생일날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시점, 버스 안에서 들었던 노래가 떠올랐다. "나쁜 짓을 하면~은~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초~ 우리에게 들~키지~ 낮에도~ 밤에도~ 느낄 수 있는 눈과 귀가 있다네~ 우리의 손오공~" 눈과 귀가 밝아야 나쁜 짓을 찾을 수 있다. 노래가사는 ‘사랑하며 살면은 평화가 올 것’이라 말한다. 만화영화 주제곡마저 이 극명한 사실을 노래한다.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과 사랑과 평화의 세상과의 상관관계는 아직 아득하다. 젠장, 전공의 힘은 대단하다.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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