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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시위가 나눠먹기 복지의 결과물?

뉴스가 있는 풍경

by 망명객 2011. 2. 9.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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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국보다 잘살던 이집트 ‘나눠먹기 복지’ 부메랑 (중앙일보, 20110209)


특파원씩이나 하는 기자 양반의 글 치곤 상당하게 비틀린 글이다. 빵값 보조금과 저렴한 공공요금이 이 양반 눈에는 '나눠먹기 복지'다. 저렴한 대학 등록금도 눈엣가시였나 보다. 복지에 투자하는 대신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대학생 수를 늘리기 보다 좋은 대학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보다 잘살던 이집트가 어찌 더 못살게 됐냐며 기자는 급기야 이집트의 사회주의적 전통까지 언급한다. 그러더니 돌연 복지성 정부 보조금이 이집트 시위의 원인이란 듯 이야기한다. "이번 혼란은 미래가 아닌 현실에 투자한 나라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

이집트 시위의 원인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장기 독재, 친미 일변도의 대외 관계,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문제와 빈곤 등, 이집트 시위는 다양한 문제들이 중첩돼 발생했다. 일자리든 뭐든 못살겠으니 바꿔보자는 게 이집트 시위대의 마음이다. 절박함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몬다. 거리에서 분노하고 절망하며 또 희망을 일구는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리라. 

이집트란 나라를 보자면 현재의 혼란은 기자의 지적처럼 자업자득이다. 데스크가 달았을 제목의 '나눠먹기 복지' 부메랑도 일면 맞는 이야기다. 정치체체가 독재의 길로 접어든 건 민중이 용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정치경제적 지배층과 국가기구의 강제력이 여기에 한 몫했겠지만, 일방적인 독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용인했기에 독재가 가능했고, 그 사이에 경제적 분배의 불평등 격차는 더욱 커졌다. 

이집트의 지배층에게 복지는 선택이 아니다. 표를 의식했으며 존립근거를 지키기 위한 필수사항이다. 한국의 차기 대권주자들이 너나할 것 없이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결국 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영도력'의 기반은 동막골 촌장의 말처럼 "잘 먹여야지"가 맞다. 기자는 잘 먹이는 걸 뒤로하고서라도 우선적으로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투자해야 했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기자가 무바라크의 경제 각료정도로 가는 게 맞다는 생각까지 든다. '복지만으로는 정권 유지가 힘들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나일강가 따라 도로를 만들고 나일강 살리기 공사판을 벌여야 한다.'

이집트 피지배층에게는 당장의 생계가 복지에 달려 있다. 일반 시장 가격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가격으로 사는 빵이 그들에겐 삶이 달린 문제다. 그 인구가 이집트의 40퍼센트에 달한다면 국가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이건 단순히 시혜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수 유지 자체, 곧 국가 존립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혼란 자체는 피지배계층에게도 부메랑이다. 거리로 나서서 거리의 승리를 맛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피지배계층은 자신이 던진 부메랑이 자신의 손에 안전히 돌아올 때까지 그 궤적과 경위를 끈질기게 지켜봐야 한다. 무바라크를 친 부메랑이 곧 자신의 목을 겨냥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복잡한 원인은 놔두고 '의무급식'을 반대하고 '토건정책'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취재일기'란 말랑말랑한 지면이 '사설'이나 '칼럼'보다 더한 독을 품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그렇게 보기 싫다면 당장 기자의 회사부터 종편 특혜를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글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펼쳐질 꼴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혈압이 오른다. 자기 이름 걸고 쓴 기사인데, 역사가들의 평가가 두렵지도 않나. 일신의 영달이 후대의 부끄러움으로 남는 반면교사가 우리 주변에는 너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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