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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경찰서장을 위한 변명

뉴스가 있는 풍경

by 망명객 2011. 8. 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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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뒤늦게 미드 열풍에 가담하게 됐다. 새로 방영하는 미드 중 눈길이 가는 건 '하와이 파이브 오' 되시겠다. 하와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액션 수사물 정도라고 설명하면 될 듯.

아직 극 초반이지만 하와이 원주민의 배타성을 드러내는 설정이 많아 재미를 더한다. 수사팀 내 뉴욕 출신 형사와 하와이 출신 팀원 사이에는 사건에 접근하는 문화적이고 방법론적인 차이가 나타난다. 현실과 연출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하와이 원주민의 속살을 보는 듯한 재미랄까. 그들도 본토인에 대한 배타성을 갖고 있다. 언어, 문화, 관습 등 섬이 갖는 공동체성은 세계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귀포 경찰서장이 경질됐다. 새로 취임한 지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경찰서장이다. 강정마을 현안과 관련해 엄정하게 공권력을 집행하지 못했다는 게 경질 사유다.

서귀포 보목마을에서 태어나 서귀농고와 방통대를 졸업한 뒤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던 그다. 그가 서귀포 경찰서장에 임명됐을 때, 아마 보목마을 사람들은 마을 대로에 축하 현수막을 붙였을 것이다. 자기 마을 출신이 관할서장이 됐으니, 그 자부심도 대단했을 터. 사돈의 팔촌 안으로는 모두 '궨당'이라며 '삼촌'이라 부르는 지역 사회이니 마을 사람들이 서장에게 거는 기대감 또한 남달랐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누구네 집 몇 째 아들이며 누군가의 형제가 고향 관할서의 장이 됐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서귀포 솔동산에서 바라본 범섬 풍경

구 서귀포시내를 기준으로 보목과 강정은 동서로 비슷한 거리에 놓인 마을이다. 자리돔축제가 열리는 그의 고향 포구 앞에는 섶섬이 놓여 있고, 강정마을 앞바다에는 범섬이 떠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뿐이다. 마을을 넘어 그에게는 서귀포가 곧 고향이다. 마을 밖에도 '궨당'들이 차고 넘치는 곳이 제주 사회다. 경찰서장이란 든든한 '빽'이 존재하더라도 모두가 '궨당'이란 터울 안에 있기에, 딱히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청탁을 하기 힘든 곳이란 이야기다.

경찰청은 서귀포경찰서가 강정마을 사안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고 판단한다. 그 결과가 경찰서장의 경질이다. 2개월 전 취임사에서 경찰서장이 동료와 부하들에게 당부했던 첫 이야기는 "주민을 위한 경찰활동에 주력합시다"였다. 범죄 예방과 양질의 치안서비스 제공을 내건 그다. 바보가 아니고서는 관할서 내 최대 현안이 강정마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취임사에는 자신의 미래를 결정지을 내용의 단초가 담겨 있다. 

"흔히 현장에 문제도 있고 그 해답도 있다고들 합니다. 현장을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은 치안분야 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분야에서 보편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현장을 벗어나면 무의미해지거나 큰 파장이 생기는 경우가 많으며, 현장에서의 대응역량이 더욱 요구되고 현장근무자가 중시되는 이유 또한 이 때문입니다." <'신임 서귀포경찰서장 취임사' 중>

취임사에서 밝힌 현장 밖 큰 파장이 
현장을 중시한 경찰서장의 경질 사유다. 외무고시 출신의 엘리트 경찰청장은 서장의 대처가 미온적이라 판단했다. 지난 24일, 현장에서 김밥으로 수모를 당한 경찰서장에게 보내는 경찰청장의 대응이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경찰청장은 감찰반을 제주도로 파견했다. 수모의 대가치곤 가혹한 처사 아니겠는가. 경찰서장은 김밥으로 맞을 당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향의 관할서장으로서 동료와 부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당한 수모가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엄정한 법 집행이란 당위와 '육지경찰' 증파 현실을 바라본 관할서장의 마음에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을 법도 하다. '아주방덜 나 아님 더 무서운 아이덜 옵니다.'

경찰서장 경질을 알리는 연합뉴스 기사에선 서귀포서 관계자의 토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우리는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정신이 없고 암담하다"며 "위에서도 제주도의 지역적 정서를 좀 고려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주경찰 강정마을 '미온대응' 후폭풍, 연합뉴스, 20110825>


24일, 경찰은 검찰에게 연행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 의견으로 검찰에 지휘를 요청했다.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안이 터지기 이틀 전 취임한 신임 지검장은 이미 인터뷰에서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터다(
박성재 신임 제주지검장 기자간담회제주도민일보, 20110822). 서귀포서장의 경질과 감찰반 파견 이후 경찰과 검찰, 국정원은 공안대책협의회를 열었다. 대검찰청 공안부는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공사를 방해하거나 적법한 공권력 행사에 폭력을 사용하는 불법집단행동이 격화되고 있다"며 "불법집단행동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공안대책협 "강정마을 공권력 도전 엄단"… 갈등 되레 악화 우려, 한국일보, 20110826). 경찰청은 경비와 정보 분야 인력으로 구성된 테스크포스를 제주청으로 파견한다고 밝혔다(경찰, 강정마을에 TF 파견…제주청 감찰, 연합뉴스, 20110826). 구속과 불구속, 2억8천여 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중이다(檢 "불법집단행동하면 가담자 전원체포", 뉴데일리, 20110826).

닭 잡는 데 소잡이용 칼을 휘두르는 꼴이다. 테스크포스와 육지경찰이 맞딱뜨릴 시위대는 마을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 현장 예술가가 전부다. 공안의 칼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일 때는 그만한 꼼수가 도사리고 있단 반증이다. 이미 우리 역사가 그러한 증거 사례들을 여럿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사업 주체인 
해군기지사업단의 태도 또한 지역정서에 역행하고 있다. 도의회가 갈등 사항을 봉합하기 위해 연 임시회에서 해군기지사업단은 출석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문 의장 “해군은 도민 능멸…도지사는 강 건너 불구경, 제주의소리, 20110816). 우근민 도지사는 '국책사업'이란 이유로 이번 사안을 팔짱 끼고 바라보는 형국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강정과 맞바꿀 경제적 지원 뿐이다([해군기지 임시회] 우 지사 '구체적 해법' 들여다보니 이틀 전과 맥락 비슷 "국회 부대의견 대로 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20110818). 재정 자립도 25.1퍼센트에 불과한 광역단체의 수장으로서 도지사는 주민의 요구를 볼모로 정부에게 지원을 요구하는 것 이상 하지 않고 있다. 

경질된 전 서귀포경찰서장 동정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경질 사안이 발표될 때 충분히 예상했던 내용이다. 일개 경찰서장이 대치 국면에서 석방 약속 카드를 꺼내기란 힘들다. 외부의 파장을 고려할 때도 보고와 지시 없이 움직이기란 힘든 법이다(관련기사 : 경찰 수뇌 강정마을 '석방 협상안' 알았나, 연합뉴스, 20110826). 30년 이상 경찰 조직에 몸 담으며 지역사회 치안을 담당했던 경찰 공무원을 순식간에 무능력한 인물로 내처버린 사안이다. 조선일보는 공권력이 무력화됐다며 이번 사안에 사설까지 동원한다([사설] 강정 해군기지에서 본 비굴한 공권력, 조선일보, 20110826). 그 어떤 지역신문보다 발빠른 대응이다. 동료와 상관의 경질 소식을 듣고 서귀포서와 제주청 경찰들이 느낄 압박감과 무기력함은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단순히 재수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주민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의 '궨당'들과 친구들이 그렇게 수근거릴 것이다. 

"조현오가 조병옥 닮아가잰 햄수다."

제주대 박사과정생인 후배가 메신저로 던진 한 마디다. 4.3과 이번 사안을 자꾸 연결짓는 건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후배에게 건넨 이야기다. 자유선진당 조순옥 의원의 아버지인 조병옥 박사는 4.3 당시 경무국장으로서 강경파의 입장에서 4.3을 바라본 사람이다. 결국, 그는 4.3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60년의 세월은 억울함이나 책망의 날 또한 무디게 만든다. 이미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4.3 단체들이 '연좌제'로 조순형을 엮을 생각도 없거니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건 오히려 유족들을 욕보이는 행위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민주당-조병옥-조순형-그리고 '제주4.3', 제주의소리, 20070904). 

미안하게도 모든 사안이 공안 쪽으로 몰려가는 상황에선 후배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는다. 강정마을 공동체의 붕괴를 넘어 이미 도민 사회의 분열로 치달았으며, '단선정부 수립을 위해서라면 제주도민 30만명 쯤은 문제없다'는 조병옥 발 풍설이 63년이 지나 또다시 재현되려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건 공동체의 붕괴다. 한라산을 경계로 남쪽 지역민이 갖는 상대적 박탈감에 더해 그들만의 공동체가 이번 사안으로 철저히 붕괴되고 있다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강정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란 소리다. 
아직도 산남 지역에선 장례식장에서 밥 대신 국수로 대접한다. 국수값이 밥값보다 싸기 때문이다. 허례허식이긴 하지만 겹부조 풍습도 굳건히 남아 있다. 겹부조 자체가 곧 사회안전망으로 읽히는 동네다. 

전임 서귀포서 경찰서장과 경찰, 강정주민은 서로 남이 아니다. 신임 경찰서장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 강정 해군기지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각종 경조사와 축제현장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는 사이다. 그 사이에 해군이나 검찰, 육지경찰이 낄 자리는 없다. 끼워달라고 할 주체들도 아니다. 똑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들이 자리를 맞대고 술잔 기울이며 할 말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겠지만, 그런 상황으로 가기까지 또 60여 년의 세월이 걸리지도 모를 일이다. 정권의 마지막 몸부림은 제주의 지역정서에 반하고 있다. 알고 있나, 한나라당? 

경찰청장 조현오와 검찰청장 한상대, 제주지검장인 박성재는 모두 고려대 동문 사이다. 조현오는 그렇다 치더라도, 신임 검찰청장과 신임 지검장의 취임 시기가 참 절묘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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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이 급박하게 돌아가느라, 애초 작정하기 시작했던 25일보다 이틀이나 지나서야 글을 마무리짓는다. 예상했던 분량보다 '변명'이 길어졌다. 내 할머니가 할 이야기는 뻔하다. "육짓것들이란~" 제주 58만의 민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소리인가? 한나라당 활동하던 고향집 아래층 아저씨의 얼굴이 떠오르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겠다던 모 인사가 떠오른다. 해군기지 공사 업체가 삼성물산이니, 당연히 그 회사 사장을 역임했다가 도지사 선거에 뛰어들었던 모 인사도 떠오르고. 해군기지 건을 두고 줄리엣이 되어버린 내 후배도. 대규모 함정단 자체가 곧 관광명소화 될 거라던 어느 보수인사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도민사회의 피해의식 위에 들어선 안보가 튼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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