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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라, 당신과 함께 가고 싶은 레스토랑

일상다반사

by 망명객 2011. 6. 27.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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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가고 싶은 식당이 있어. 명동에 위치한 티베트 레스토랑인 '포탈라'야. 한국 이름이 '민수'인 내 동년배 네팔인이 그곳 사장님이지. 이주민센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워크숍 뒷풀이차 처음 그곳을 찾아갔어. 영화 반두비의 주인공인 방글라데시인 마붑씨도 우리와 함께한 자리였지. 마붑씨와 민수씨는 서로를 잘 알고 있더군. 우리는 몇 개월 전에 강제출국된 네팔인 친구의 근황을 물었고, 민수씨는 담담하게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줬어. 이미 그런 경우를 많이 본 사람처럼, 그의 이야기에선 그 어떤 감정도 찾아보기 힘들었어. 

이국적 분위기의 레스토랑에는 역시 이국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듯해. 네팔인이지만 망명 티베트인의 아들인 '민수'씨는 자신에게 티베트 독립 문제를 물어보는 짓꿎은 손님들도 있다고 이야기했어. 조금 격양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꺼낼 때도 '민수'씨의 일정한 목소리톤은 평정심 그 자체였지. 감정의 임계점이 동년배에선 찾기 힘들만큼 높아보였어. 내 목소리는 늘 감정에 충실하거든. 

▲ 포탈라 사장 민수씨

마침 토요일 저녁 시간이라 티베트 가수 펜파씨의 공연도 볼 수 있었지. 펜파씨도 티베트인의 후손이야. 그는 티베트의 독립을 염원하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야. 나와 내 일행은 펜파씨와 민수씨에게 네팔 전통 악기 다루는 법을 잠시 배웠고, 맛있는 식사와 맥주로 만남 자체를 축복했어. 포탈라. 레스토랑이지만, 그 안의 분위기는 어느 망명정부의 한이 서려 있는 듯했어. 이산과 이주의 그늘 아래 새로운 만남은 곧 축복이라 믿게 만들더군. 

며칠 전에 센터 직원 선생님이 지나가듯 이야기하더군. 그 '민수'씨가 뇌수막염을 앓고 있다고. 또 다른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시더군. 포탈라가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고. 언론에 포탈라의 이야기가 실리더군. 이주민 민수씨와 그 아내가 대를 이어 겪는 아픔. 

"내 아버지 목숨값, 재개발하면 얼만가요" (한겨레, 20110616)
'망명 티베트인'에서 '명동 철거민' 기구한 운명 (서울신문, 20110603)

옛상처를 일깨우는 삶은 그리도 잔인하지. 사연 없는 삶은 없다지만, 이불장 안 깊숙한 곳에 감춰뒀을 법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그만큼 '민수'씨 부부가 절박하다는 이야기겠지. 이 부부의 이야기가 단순히 안타까움만으론 끝나선 안 될 것 같아. 감정의 임계점이 낮은 나는 이 이야기에서 쉽게 분노를 느끼게 돼. 

아득하게나마 이제 조금 '민수'씨의 평정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정체는 책임감일 거야. 가족이 유일한 고국인 그에게는 그 누구보다 번듯이 이 사회에 자리를 잡아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

당신과 함께 포탈라에 가려 해. 함께 분노해달란 이야기는 아냐. 그저 맛있는 티베트 음식을 나와 함께 즐겨줬으면 좋겠어. 음식 맛 앞에선 분노나 절망도 잠시 사라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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