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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도서관 문 닫던 날

일상다반사

by 망명객 2011. 6. 2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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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도서관이 폐관을 선언합니다. 

 

모두가 즐거워야 할 축제기간에 우리 생도지기 일동은 생도의 폐관을 선언합니다. 이는 오랜 숙고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이념의 시대가 종언을 구하고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던 지난 94년, 생도는 신문방송학과(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도서관과 행정학과 학생회의 도서를 기반으로 사회대에 터를 잡았습니다. 록음악이나 독립영화와 같은 문화담론과 여성이나 환경에 관한 관심을 수용하기에 대학 울타리 안에 엄연히 존재하던 중앙도서관의 한계는 극명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함께 사회대 내 학회 활동의 지원 기구이자 학술센터로 생도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폐관 사유

사회대 내 자치기구로 출발한 생도지만 그 존재 자체를 연명하는 건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생도의 존재 가치 문제였습니다. 학술학회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신규 서적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생도는 옛날 책들의 무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용자가 줄면서 대학 측으로부터도 고운 시선을 받기 힘들었습니다. 2003년에는 생도가 자치기구에서 동아리로 전환하게 됩니다.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책을 지키자는 게 전환 이유였습니다. 거창한 대학평가를 앞두고선 생도에 특정 학과 도서관이란 명패를 달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점들이 결국 두 번째 이유인 공간 문제로 이어집니다. 96년 개축에 이어 지난해 개축 시에도 대학은 협의와 달리 학생 자치활동 공간을 줄였습니다. 현 생도 공간은 개축 전 공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학생 자치공간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 변주했지만 변하지 않는 오래된 습관

대학 자치활동의 퇴조를 두고 혹자는 오래된 습관의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생도라는 공간 내에서 책 속에 매몰된 우리 생도지기의 모습이 자못 오래된 유물은 아닌지 되묻게 됩니다. 한양대 학우들과 소통하기 위해 소액의 예산과 자비를 들여 시네마데크와 저자 초청 강연, 도서 소개 대자보 활동 등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는 변주했지만 변하지 않는 오래된 습관이었습니다. 좀 더 창조적인 활동을 벌이지 못한 점이 생도라는 공간을 만들고 자신의 책을 기꺼이 맡겨준 여러 선생님들과 선배들에게 죄스럽습니다. 

 

- ‘자유로운 인간 창조하는 공동체?’

책이 좋아 모였고 책을 매개로 토론과 우정을 나누던 우리 생도지기는 이제 생도 공간을 사회대 학생회에 반납합니다. 행당터 앞에 존재하던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은 이미 지난 96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대학 근처에서 교과서 외의 책을 취급하는 서점을 찾기란 힘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인터넷 서점의 출현이 그런 시대를 이끌었는지도 모릅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대학인의 인식 또한 변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등록금과 취업난으로 가중된 불안감은 자유로운 인간을 옥죕니다. 창조하는 공동체는 소비의 공동체로 변했습니다. 

 

- 폐관하며 거는 마지막 희망

힘을 다하지 않았거나 힘이 미치지 못했거나, 폐관 결정은 우리 생도지기에게도 모질고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사회대 학생회에 공간을 반납하고 학우들에게 책을 나눠주며 한 가지 희망을 가져봅니다. 또 다른 상상력으로 무장한 학우들이 새로운 학술공간을 꾸리는 것. 파괴와 창조의 순환과정에서 오래된 습관은 벗어던지고 새로운 희망이 싹 틀 그 날을 꿈꿔봅니다. 

 

<자유로운 인간, 창조하는 공동체 생활도서관>

 

 

2011년 5월 17일


내 20대의 3할을 차지하는 공간이 문을 닫았다. 아쉬움은 남지만 오래된 왕조의 유물같은 공간에서 추하지 않게 폐관을 결정한 후배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변명이나 원망은 울림을 남기지 못한다. 네탓이란 타박은 자신을 향할 때 비로소 진정성이란 갑옷을 입게 된다. 동아리 활동조차 취업을 향한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변질된 세태 속에서도 순도 높은 순수함을 지키려는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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